
“타오르는 지옥 아래에서 보기 좋은 꼴이야, 그대.”
「Never leave SIRIUS without an INFERNO」
크림힐트
No. 0169 ✶ 크로뱃
25 ▪ 162 cm ▪ 55 kg
틈새포착
상대의 벽이나 대타출동을 뚫고 공격할 수 있다.
스탯
체력 ✶
◆◆◇◇◇
힘 ✶
◆◆◆◆◇
민첩 ✶
◆◆◆◆◆
행운 ✶
◆◇◇◇◇
작열하는 일출 아래에 비명 지르라
아래로 내려갈수록 날개의 피막과 같은 색이 되어가는 보라색 머리카락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버섯도 스스로가 독을 품고 있음을 다양한 색채의 공명으로 알린다는데, 사람 또한 그와 동일하다. 다양한 종의 포켓몬이 모여 있는 인류 특성 상 크게 신경을 쓸 부분은 아니라지만, 일반적인 크로뱃과 확연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색채를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누군가는 어쩌면 두 가지 색채가 녹아 있는 그의 머릿결을 보고 불길하다 여길지도 모르지. 다만 분명한 것은, 그는 분명히 열화 아래에서 살아가는 존재란 점이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지옥 속에서 눈을 감고 살아가는 자, 그것이 크림힐트를 이루는 첫 번째 증언이었다.
그 열화의 이름을 순백의 절망이라 일컫는다면
감은 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뜨이지 않는다. 정확한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으나, 빛이 내리쬐는 세계에서 쉬이 눈을 떠버리면 곧바로 멀어버릴 수 있기 때문일까. 때문에 사람들은 눈보다도 더욱 확실한 요소로 크림힐트를 인식해야 했다. 이를 테면 손과 팔에 곧바로 뻗어 있는 첫 번째 날개와 허리 뒷편으로 뻗어 나온 두 번째 날개를 통해서. 자라난 두 쌍의 날개 탓에 입을 수 있는 의류 또한 한정되어 있다. 지금의 옷가짐을 고집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다. 소매가 있어봐야 날개에 걸려 불편할 뿐이고, 특수 제작한 의류가 아니라면 허리 쪽의 날개를 계속 접고 있어야 하니. 타인의 눈에 들어 이 모든 것을 보여야 함은 곧 빛이 그에게 선물한 또 다른 절망이자, 그를 이루는 두 번째 증언이다.
모든 절망의 끝에서 기꺼이 찾아오는 자가 있으니
그러나 모두에게 절망만이 가득한 지금의 세계에서 크림힐트는 기꺼이 제 심장 윗부분에 걸어둔 증표를 통해 길을 밝히며 걸어올 수 있었다. 모두의 눈에 들 수 있도록 영광을 드높이되 경박하게 과시하지 않는다. 감긴 눈꺼풀 너머로 비쳐오는 역광에 눈이 부시더라도 제가 손에 잡아낸 것을 타인에게 양보한다. 모든 절망의 끝에서, 그는 기꺼이 홀로 남은 모든 외로운 존재들에게 희망의 시작을 안내한다. 어둠 속을 거니는 크로뱃도, 타인을 진정으로 품지 못하는 자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에 대해 묻는다면… 크림힐트는 답변하는 대신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인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상냥함을 갖고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을 해낼 뿐. 자신을 눈에 담는 모든 이들이 절망하는 대신 짙은 혈색에 이끌릴 수 있도록, 가장 높은 별을 이정표 삼아 그리웠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둘씩 모두 자신 의 밤하늘을 밝혀내다 보면, 분명 이 모든 지옥도 가라앉고 말리라는… 헛된 희망. 이건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크림힐트만의 세 번째 증언일 것이다.


성격──
강박 | 프라이드 | 표리부동
그대, 용건이 끝났다면 썩 꺼지도록 해.
강박
사소한 일에도 주의를 잃지 않고, 사고를 훑고 지나가는 모든 사건을 자신이 관측 가능한 범위에 두어야 마음이 풀리는 강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타인이 보기엔 제법 지나친 강박으로 자신을 통하는 모든 것을 확인하려 하기 때문에 무엇 하나 마음 놓고 말을 건넬 수 없는 부류에 속하지만, 그런 만큼 크림힐트는 되도록 실패가 없는 완전한 마무리를 중시하며 그에 걸맞는 결과와 함께 돌아오곤 하는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 돌 다리를 두들기고도 모자라서 온전히 부순 다음 흘러오는 물을 온전히 막아내고 새 강철 다리를 만들어둔 후에 다시 테스트를 거치면서 본인은 그 위를 날아서 통과할 타입. 표면적으로는 어느 하나 어긋나는 것을 무서워하는, 계획 외의 사건이 벌어지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통제적인 부류로 느껴질 수 있으나 다행인 점은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까지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 오직 자신에게만큼은 엄격한 판정 기준을 거친 후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를 매겨가며 복잡하고 귀찮게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사람들을 상처입히는 일을 극도로 꺼리는 성정 탓에 크림힐트는 언제나 반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화 도중 침묵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은 당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들려온 대화를 통해 자신이 해내야 할 행동 방침을 새로 써내려가는 중일 뿐. 타인에게는 너그럽게, 그러나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열정으로 번지지 않고 오직 냉정만을 유지하는 그에게 있어 이는 당연한 것이다.
프라이드
고풍적인 어휘에서도 느낄 수 있으나, 크림힐트는 자신이 걸어온 길 자체에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자부심이 절대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란 것에는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으나, 이 탓에 함께 탐험대 업무에 임하는 동료인 당신에게는… 아니. 모든 사람에게 너, 네 녀석 따위의 지칭 대신 그대라는 지칭을 사용하며 대우한다. 시리우스는 밝게 빛나는 별, 그에 걸맞게 행동하지 않고 가벼운 태도로 상대를 대우하면 찬란한 빛을 흐리게 할 얼룩이 될 뿐이기에.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크림힐트는 모두에게 향하는 대우를 바꾸지 않을 테지만, 현재의 대화관이 자리잡게 된 것에는 탐험대의 입단이 가장 큰 사유로 자리잡고 있다. 타인에게는 당당하지만 위치를 지켜 정돈되게, 그러나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크림힐트가 지금까지, 적어도 ‘물리적인’ 다툼 없이 원만하고 평화적으로 제 입지를 지켜온 이유이자 그 나름의 처세였다. 말은 본인을 비추는 거울이요, 지칭은 상대를 직접 나타내는 말이니. 비록 본인을 비추는 거울에 무엇이 새겨질지는 그만이 알고 있을 것이나, 상대방을 비추는 것만큼은 최선을 다하여 대우해야 했다. 보잘것 없는 초라한 이가 멈추지 않을 동기를 얻을 방법은 별이 안내하는 길을 따르는 것, 크림힐트는 그것을 위해서라도 시리우스의 이름을 드높이려 힘쓴다. 시리우스의 이름 아래에서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다면, 아주 잠시 동안일지라도 저 또한 그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라 착각할 수 있었기에.
표리부동
크림힐트는 타인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자신과 가까워지려 하는 상대를 거부하고, 밀어내왔던 것이 그 진실이다. 본인의 말마따나 “그대와 더 나누고 싶은 감정은 없으니 썩 꺼져버리도록 해.” 따위로 마음을 표현하는데, 누가 그의 곁에 남아 대화를 걸 시도를 할 수 있을까. 허나 인류학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현 인류는 알 수 있겠지만, 크림힐트는 크로뱃이다. 골뱃이 크로뱃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인류애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대가 무엇을 느끼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도, 크게 상처입은 채 사례금조차 거두고 돌아가는 의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크림힐트의 모습에서는 분명한 쓸쓸함이 느껴졌으며, 이는 같은 시리우스 단원인 당신이라면 익히 봐왔을 모습이다. 그가 타인을 좋아한다는 가정은… 음. 분명 무의미하겠지만, 적어도 그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것임은 시리우스 단원인 당신이라면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가 표현한 것처럼 철천지원수에 가까운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그 또한 그가 받아내야 할 업보. 크림힐트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고, 자신의 속마음을 절대 상대에게 풀어내려 하지 않으니. 누군가 자신을 힐난하며 손가락질한다 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당신이 보아왔던 크림힐트의 모습이다.
기타사항──
화가 크림힐트
빛을 잃은 세계에서 인간이 여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빛을 발하는 것을 찾거나, 짙은 어둠에서도 익숙해야만 했다. 빛이 들지 않아도 시야를 식별할 수 있어야만 겨우 여가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 열화가 발생하기 전 크림힐트가 살아온 세상이었다. 크림힐트는 그런 세계에서도, 적어도 그림을 구매한 자가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불완전한 등불을 통해 부족한 여가를 채우길 바랐다. 17세 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화가로서의 크림힐트는 피를 통해 캔버스를 적시는 예술가를 자칭했다. 모든 작품의 메인 컬러링은 꾸덕한 질감의 검붉은색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암전된 세계에서는 가난하지만 그림을 눈에 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값을 받지 않는 모습으로도 유명했다. 물론 굳이 제 모든 그림에 값을 매기려 하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예술을 받아들이길 좋아했던 괴짜들에게선 작품마다 엄청난 금액을 받을 수 있었던 만큼 널리 이름을 떨치긴 했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 지난 날의 영광일 뿐이다. 당연히 실제로 피를 사용한 것은 아니며, 암전 속에서 작은 빛으로 바라본 그림이 그 순간의 쓸쓸함을 달래주기 위해 크림힐트가 택한 방법은 그 어떤 색채도 삼켜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것을 캔버스 내에 새겨넣는 것이었다. 크림힐트 본인에게도 피는, 피는… 적어도 물감으로 이루어진 피는 눈으로 마주하기에 매우 편했다. 암전된 곳 속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눈을 바라보지 못할 테니,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작품 활동 중 출품 등으로 사람을 만나왔을 땐 절대 '또 오시길.' 이란 인사는 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본인을 다시 만나는 일은 부담스럽고 성가시다 자각하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 마주칠 일이 없길 바라 손만 흔들거나 고개를 돌린다. 탐험대 활동도 마찬가지. 구조한 사람에게 사례를 직접적으로 받지 않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을 전부 날카롭게 내친다. 썩 꺼져버리라는 말을 들은 거래자와 의뢰자들은 그 뒤로 크림힐트를 만나지 않거나, 면대면으로 만나려 하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탐험대원 크림힐트
사람을 곁에 들이지 않고 오히려 내칠 뿐인 크림힐트의 심장 위쪽에 위치한 탐험대 배지를 보면 누구든 그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만나는 이마다 까칠하게 내치며 손을 잡으려 하지도 않는 이가 대체 무슨 사정으로 탐험대에, 그것도 암전 이후 가장 밝은 별로서 사람들의 곁을 비춘 시리우스에 빛과는 하등 어울리지도 않는 크로뱃이 어떻게 입단하게 된 것일까. 본인 딴에는 돈만으로는 물감을 구하기 쉽지 않았기에 각지에서 직접 소재를 모으기 위함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상한 일이지 않나. 그것만이 진실이라면 열화 이후 크림힐트가 더 이상 시리우스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을진데…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그 내막을 알지 못한다, 본인과 자신을 영입하는 것에 동의한 시리우스의 관계자를 제외하면. 다만 분명한 것은, 시리우스로서의 크림힐트는 자신이 맡은 바를 거부하지 않고 무엇이든 해내왔던 사람이란 점이다. 하늘과 가까워 타오를 수 있음에도 네 날개가 필요한 곳이라면 아무런 소리 없이 구조를 떠났고, 빛나는 조각으로도 온전히 비추기 어려운 장소가 있다면 크로뱃으로서의 습성을 통해 가장 깊은 곳까지도 도맡아서 탐험과 구조, 조사를 이어가는 성실한 단원이다. 어쩌면 크림힐트가 활동하는 도중 어려운 임무를 해결하고 돌아왔을 무렵 단원들에게 환영을 받는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마다 크림힐트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만큼 숭고한 이유로 구조를 하는 것이 아니니 감탄은 삼가도록 해." 라며 환영을 거부해왔다. 전술하였듯 이는 구조한 이에게도 마찬가지. 자신이 맡은 일은 그저 당연히 할 일일 뿐이었고, 다시는 자신과 만날 일 없길 바란다며 괜히 타인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등을 돌려 떠나온 것이 어느덧 6년 차. 지금까지 당신이 마주해온 크림힐트의 행보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물감 소재를 구하기 위해 탐험대를 시작했다고 알려진 크림힐트는 주로 조난당한 이를 구조하는 임무를 맡아왔고, 인솔된 요구조자들이 하나같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의 의뢰만을 고집했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임무를 분배하는 것은 상관의 의지였기에 딱히 그런 임무를 받지 못하여도 자신이 맡은 바를 성실히 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당신과 함께 임무에 참여한 적이 분명 있었을지도 모르고,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왔을지도 모르나 언제나 크림힐트는 “수고가 많아.” 한마디만 하고선 등을 돌려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동료로서는 믿을 만한 사람이나, 친분이 동반되는 관계로서는 최악이었으리라.
따스한 포옹, 삶과 죽음, 피
좋아하는 것은, 아니. 좋아했던 것은 비. 날개에 습기가 서리고, 머리칼이 젖고, 캔버스가 망가지는 날씨임에도 비가 오는 만큼 사람들은 각자의 우산 안에 다른 이를 담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음파로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모를 만족감과 자그마한 희망을 느껴, 비 내리는 날씨를 좋아했다. 그러나 104일 전 열화가 시작되었고, 더 이상 극히 일부의 상황을 제외하면 비를 볼 수 없게 되었으니 크림힐트는 항상 양산을 잡고 다닌다. 햇빛을 싫어하는 것은 크로뱃으로서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 외로 싫어하는 것이 또 있다면, 피. 피를 보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렇기에 실제 피를 사용하는 일도, 피를 내기 위해 무리하는 일도 없다. 마시는 것도 피가 아닌 붉은 색감의 나무열매주스나 토망열매 과즙일 뿐, 실제로 짙은 피와 혈향을 마주하면 그 자리에서 도망칠 정도로 피를 상당히 무서워한다. 크로뱃인데도 피를 무서워한다는 것이 특이해보일 순 있으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기에.
그 외 정보
- 시리우스에 입단한 후로는 6년, 갓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곧바로 탐험대에 합류했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앞둔 시리우스에서는 신인에 가까운 인원…이었을 터인데, 인원의 변경과 열화 이후의 신규 입단자가 많아져 선배 측에 속하게 되었다. 젊은 나이를 고려하면 임무와 전투에 숙달되어 있는 신예.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장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각자의 자리와 시간에 맞는 대우를, 태도를, 그러나 곁에 다가오지 않도록 등을 돌리는 일관적인 모습을.- 날개가 없는 포켓몬을 기준으로 한다면 표준, 두 쌍의 날개가 있는 그를 기준으로 하면 다른 종의 포켓몬에 비해 상당히 가볍다. 골격부터 날개짓하기 위한 종속적 요소까지, 크로뱃은 가벼운 뼈를 갖고서 어디까지고 날아오를 수 있도록 진화해왔으므로. 단, 체형 또한 마른 편에 속한 탓인지 크림힐트 본인은 바람의 도움이 없으면 쉽게 날아오르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섭취하는 영양이 적기도 하고, 먹는 것이라고는 나무열매주스나 열매 과즙 혹은 가끔 가다 간단한 주먹밥이나 입에 털어넣고 식사를 마칠 뿐이니 날개 부분의 피골이 상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 현재는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가는 중. 지금까지의 세상이 으레 그래왔듯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왔다. 불운한 사고로 가족을 잃었던 것은 분명 기억에도 새겨졌을 만큼 아픈 사건이었지만, 현재의 크림힐트는 시리우스로서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애초에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어, 위험에 처하더라도 확실히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할 수 있기에 생각이 어지럽지 않기도 하여. 소중한 존재가 있는 상황이라면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귀찮은 명분과 그를 지켜야 한다는 약점이 생기고 말지만... 잃을 것이 없는 지금은 발목을 잡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 화가를 꿈으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려서부터 자신은 너무나도 쉽게 음파를 통해 암전 속을 식별하며 살 수 있었기에, 암전 속에서 빛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강렬한 색감으로 벽에 낙서를 그렸던 것이 화가로서의 첫 걸음이었다. 어렸던 크림힐트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던 부모는 아이의 그림을 보고 무척이나 감동했으며, 그때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크림힐트는 지금도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의 그림을 진심으로 곁에서 찬미해줄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있지 않지만, 덧칠되어가는 붉음과 삶으로 많은 사람이 쓸쓸함을 지울 수만 있다면…
-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그 누구에게도 능동적인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다. 타인이 자신의 날개 를 건드리거나, 볼을 찌르는 등의 행동에는 별 반응을 하지 않지만 자신이 직접 누군가의 신체에 손을 가져다 대지는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큼은 지켜야만 했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접촉을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에 이유는 분명 있을 터이나,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한 적 없다.
- 언제나 초음파로 시야를 식별하는 이상 당연하지만, 파동을 울리는 금속음이나 고주파의 울음소리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쓰러져선 안될 상황 (ex. 구조 임무 도중) 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신을 유지하며 탈출을 위해 힘쓰지만,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풀썩 쓰러질 정도로 매우 치명적이니 주의할 것.
- 대신, 눈 뜨지 않는 한 모든 상황으로부터 자유롭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 자그마한 사고의 틈을, 공기가 통하는 방향을, 빛이 드는 방향을, 소리가 물체에 부딪쳐 일으키는 파형을 인식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을 공략해낼 수 있는 그만의 특성이며, 그가 위험한 임무에 나가서도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 돌아오는 근거가 되어주기도 했다.
- 생일은 4년에 한 번씩 온다는 부모의 옛 말을 제외하면 그와 관련된 정보를 기억하진 않는다. 태어난 것을 축하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며 반대로 물어올 뿐이고, 애초에 자신의 탄생을 축하해줄 사람은 그 누구도 남지 않았기에. 특별히 챙기지도, 챙겨받고 싶지도 않은 쓸쓸한 날이다.
- 촉각이 매우 뛰어나 주먹밥을 정말 잘 만든다. 촉각이 뛰어난 것과 대비되게 작열통은 잘 느끼지 못해 뜨거운 밥을 만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식량이 필요하다면 직접 만드는 편. 단, 주먹밥을 만들다 밥풀이 날개 피막에 묻는 것은 불편하다고.
- 열화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 은 사람들이 등불과 기술 등의 발광체 없이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열화는 절망, 또 다른 이름으로는 불행이기에. 말라가는 대지를, 타오르는 녹음을, 밝아온 빛에 시야를 잃어가는 자들을 바라보며 크림힐트는 쓸쓸함을 느낀다. 빛이 내리쬐는 세계에서는 제 그림이 전혀 필요하지 않아 지난 104일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더욱 늘어만 가는 사람 간의 침묵을 느끼며 크림힐트는 여전히 시리우스로 남아 있다. 더 이상 시리우스는 가장 밝은 빛이 아니지만… 시리우스는 언제나, 가장 높은 희망이었기에. 자신이 그 과분한 뜻을 온전히 받들 만한 인재가 아니더라도, 시리우스에 속한 사람이라면. 재앙으로 자리잡은 열화에 맞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크림힐트는 자신을 불태우는 작열 속에서도 희망을 위해 걸어간다. 비록 그 곳에 자신을 위한 자리가 없을지라도.
관계──
녹명 ✶ 크림힐트의 싫은소리, 녹명의 방음!
해와 달이 공존하던 세상을 기억하는 예술가와 암전 시기에 태어난 예술가. 예술관이 펼쳐지는 영역은 서로 다르나 각자의 작품에 대해 토론을 남기거나(적어도 열화 이전까지는) 조용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등으로 어느 정도 죽이 맞았던 동료다. 비록 지금은 녹명의 넘쳐 흐르는 에너지로 인해 크림힐트가 스리슬쩍 대화를 피하곤 하나 나름 이전의 친분을 유지하고는 있다. 괜히 싫은소리를 내뱉으나 피가 흐르지 않는 몸을 가진 상대에게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크림힐트와 싫은소리는 가볍게 흘려보내며 탐 험대의 최고참으로서 탐험에서는 마음껏 신뢰할 수 있는 녹명, 열화 아래에서 둘은 어떤 작품을 빚어낼 수 있을까? 우선 녹명에게 향하는 전기부터 약간 덜어내고 생각하자.
로트바인 ✶ 사례 떨이와 사례 털이
어느 순간 자금을 노리고 접근해온 자와 별 신경 안 쓰고 금고를 열어대는 자의 관계. 크림힐트의 입장에선 선배 대우를 할까 싶었으나 (본인이 허락하긴 했다.) 의뢰 보상 독점이나 동반 의뢰에서의 행적 등으로 일찌감치 선배로서의 존중은 접어둔 지 오래다. 다만 탐험대 내에서 평판이 유독 안 좋기로 유명한 둘이 모여서인지 크게 다투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물주로서의 입지가 다져지다 보니 어느새 로트바인 쪽에서 간신배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과연 닥쳐올 이야기 속에서 돈으로 얽힌 둘은 무엇을 털어내고 무엇을 떨쳐낼까.
베인 ✶ 살아가는 것에 타인이 필요한 이유
누군가의 손을 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골뱃과, 누구의 손이든 밀어내고 마는 크로뱃의 관계는 일반적인 지인과는 사뭇 다르다. 같은 계열의 포켓몬이라는 사유든, 뜨겁게 타오르는 열화 아래 양산의 그늘에 의지하기 위해 어슬렁거리든, 언제나 한 발짝 먼 곳에서 동료들을 바라보는 모습에서든, 그에 따른 동질감이든... 빛을 상징하는 시리우스에서 베인과 크림힐트는 분명히 그림자에 속하는 이들로써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장난으로라도 누군가를 깨물어도 되냐는 농담은 해선 안 된다'는 등 잔소리를 일삼으며 누구도 원치 않은 조언을 건네는 크림힐트와, 굳이 타인에 속할 의의가 없기에 고립을 택했으나 서서히 모르는 것을 배워나가기 시작한 베인은 닥쳐올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기에 필요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까.
